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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서관의 새로운 한 획을 긋다!

작성자 : 관리자 (39.119.57.***)

조회 : 894 / 등록일 : 20-06-08 10:22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두꺼운 안경과 펼쳐진 책 그리고 따뜻한 커피 한 잔...? 공익 광고의 한 장면이 그려지는 건 기자의 편견일까. 도서관 관장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중 전화선 너머 들렸던 지적인 음성이 떠올랐다. 사서들이 가장 듣기 싫어한다는 ”책 많이 읽으세요?“같은 뻔한 질문은 하면 안 되는데... 문이 열리자 눈앞엔 소녀같이 수줍게 미소를 띈 정기애 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6월 4일부터 국립장애인도서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직속 1차 도서관으로 승격된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쁜 날이 아닌가. 그러나 더해진 왕관의 무게만큼, 어깨의 짐도 한층 무거워졌다. 가장 골머리를 썩이는 예산 문제부터 풀어가야 할 실타래들이 잔뜩 놓여 있다. 임기 1년을 남기고 장애인도서관 역사의 한 획을 긋기 직전, 그 시작점에 서 있는 그녀를 만나봤다. 

1. 축하드립니다 관장님. 1차 도서관 승격을 해내셨어요. 여기까지 오는데 숱한 논의와 시도들이 있었을 텐데요.

네. 맞아요. 가장 큰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예산’이에요. 예산 확보를 위한 처절한 투쟁의 시간이었죠. 저희 도서관 사업의 80%를 차지하는 게 ‘대체자료' 제작이에요. 서적을 시ㆍ청각장애인이 보고 들을 수 있는 형태로 전환하는 걸 말해요.

시각장애인은 ‘데이지포맷’이라는 음성자료나 점자도서를 보고, 청각장애인은 화면해설자료 등이 필요한데, 이런 대체 자료를 도맡아 생산하는 곳이 저희뿐이 없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장애인정보센터의 개념으로 설립됐다가, 점점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정보격차가 심해지면서 기존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데에 공감을 얻어서 논의를 시작하게 됐어요. 

2. 대체자료 제작에 도서관 운영까지...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예산 편성 규모가 어떤가요?

장애인 복지 예산이 2조6천억이에요. 저희는 60억 조금 넘게 받아요. 그런데 장애인 체육복지 예산은 1천억이 넘거든요? 정보복지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죠. 우리 기관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장애인 대체자료 제작 기준을 만들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곳인데 예산 격차가 심해요.

또 지금까지 국립중앙도서관(이하 국립도서관) 소속 하에 있다 보니, 쪼개고 쪼개서 겨우 예산을 받는 구조라서 “예산 증액해주세요”하고 쫓아다니면 정작 국립도서관 예산이 줄어드는... 본의 아닌 피해가 되구요. 고차원적인 접근보다는 말 그대로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원초적인 접근으로 시작한 문제에요.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3. 1차 도서관 승격으로 기존 사업도 확대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아요.

네. 어깨가 무겁네요.(웃음) 먼저는 도서관의 ‘권위’가 상승되죠. 일례로 대체 자료를 제작할 때 공통적인 기준이 필요한데, 복지관이나 대학교 장애인지원센터도 대체자료를 만들지만 기준이 다 제각각이에요. 제작 표준을 만들고 그에 맞춰서 일을 할 수 있게 제시하는 데는 도서관의 위상도 중요하죠. 

교육도 마찬가지에요. 비장애인들은 정보 가독 능력이 좋지만, 시ㆍ청각장애인은 대체 자료가 주어져도 읽을 수 있게 따로 연습을 해야 돼요. 대부분 청각장애인은 교육만 잘 받으면, 일반 텍스트도 잘 읽을 것이라 보지만 전혀 아니에요. 수어가 그 분들의 언어잖아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텍스트 훈련도 받아야 되는데, 교육 기회가 잘 없거든요. 그래서 학교 도서관에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급하려면 정부 부처와의 협력이 아주 중요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2차 소속기관으로 있었다보니 한계가 있었어요. 또 1차 소속기관으로 가야한다는 명분으로도 잘 작용했구요.

4. 하루에도 수많은 서적들을 대체자료로 전환하는데, 제작 비율과 보급 현황은 어떤가요?

현재 대체자료 제작 비율은 일반 출판물의 10~13%까지 올라갔어요. 그런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 전환 비율은 1%밖에 안돼요. 시각장애인은 10권 중에 1권만 볼 수 있다는 말이에요. 혹자는 전자출판물(e-book)은 보이스 기능이 되니까, 접근이 용이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것도 오해입니다. 저희 쪽에 요청하는 자료는 대부분 어려운 서적이에요. 그래프나 사진 등 음성으로 해석하기 난해한 것들이 많죠. 특히 전자출판물은 페이지 넘김 기능이나 표준 요건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 많아서 저희가 다시 손 볼 때가 많아요. 전환 과정에서는 비용이 또 발생하구요.

애초에 출판사들이 장애인 접근성을 반영해서 출판하면 좋겠지만, 10~12%의 비용을 부담해야하니 쉽지가 않아요. 정부가 온라인 서적에 BF편의를 의무화하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대책이 필요한데, 이것도 역시 2차 기관으로서 요구하기엔 무리가 있구요.

5. 대체자료를 제작하려면 저작권 등 예민한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대체자료 전환 비율이 낮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 출판물이나 영화같은 영상물을 대체자료로 전환할 때 출판사와 저자 입장에선 부담이잖아요. 특히 시각장애인 음성자료(데이지포맷)를 만들려면 텍스트로 작업해야하는데, 파일이 유출되기라도 하면... 청각장애인 해설자료화면 등 BF(베리어프리) 영상물도 유출 위험 때문에 못 만들고 있어요.

화면해설자료 제작을 원천적으로 막지만 말고 저렴한 비용을 받고서라도 시기가 지난 영상물부터 제작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봐요. 요즘 소프트웨어 보완기능도 좋아졌고, 여러 단서조항도 달아보지만 아직 신뢰가 부족한 탓인지, 호의적이진 않네요. 상업적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주에서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저작권법」, 「국가정보화 기본법」, 출판물에 관한 법령 등 법안 개정에 힘쓸 생각입니다.


국립장애인도서관 정기애 관장 ⓒ소셜포커스
6. 아무래도 정보 접근성이 취약한 시ㆍ청각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가 많은데, 지체ㆍ발달장애 등 다른 장애유형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을까요?

저도 지체장애인인데, 지체 쪽은 물리적인 접근성 문제가 있어요. 자료를 넘길 수 있는 손이나 팔이 마비되는 기능적 장애도 있구요. 앞으로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요. 현재 20%의 공공도서관만이 특수 설비를 갖추고 있어요. 저희 도서관은 보조공학기기나 시설 편의를 제공하지만, 중증장애인분들은 이곳까지 오기가 힘들잖아요. 주로 지역 도서관을 이용할 텐데, 대게 편의 시설도 미비하고 보조공학기기가 없는 곳이 많죠. 어떤 도서관은 ‘장애인 도서관 코너’라고 구석에 달랑 컴퓨터랑 높낮이 조절 책상만 갖다 놓고 구색 갖추기에 급급하기도 하구요.

현재 정부 50%, 지자체 50% 분담해서 지역 대표 도서관에 보조공학기기 설치를 지원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설비 자문을 늘리고 보조금도 확충해서 중증장애인이 맘 놓고 갈 수 있는 도서관을 확대해가는 게 목표에요. 도서관 차원으로는 택시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가까운 전철역이면 모시고 오거나, 가실 때는 택시비 전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책나래’라고 우체국 택배를 이용해서 집으로 책을 배송하고 반납하는 서비스도 호응이 좋아요. 코로나19때문에 이용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죠. 

7. 이제 독립을 하니 방을 빼야할 텐데, 별도의 공간으로 가기엔 아직 무리가 있죠?

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물리적인 독립도 해야죠. 특히 열람실 확대가 시급한데, 시ㆍ청각장애인이 한 공간에서 활동하려니 종종 갈등이 생겨요. 청각장애인은 소리에 둔감하니까 큰 소리를 내도 잘 모르지만, 청각이 예민한 시각장애인들은 불편함을 호소할 때가 있거든요.

무엇보다 장애인의 커뮤니티 공간도 필요해요. 발달장애 자녀를 둔 보호자분들은 독서 모임에 와서 정보도 공유하고 시너지(협동) 효과를 내는데, 정작 도서관에는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거든요. 어떤 모임은 공연도 하는데 극장 대관료가 만만치 않잖아요. 이런 모든 문화 활동을 도서관에서 할 수 있도록, 단순히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으로선 부지라도 확보했으면(웃음) 하는 바람이 큽니다.

8. 관장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 명함에 기록학 박사라고 적혀있어요! 원래 어떤 분야에 종사하셨어요?

원래는 원자력 설계 전문회사에서 기록ㆍ정보관리 업무를 30년 간 해왔어요. 2015년에 국가기록원에 기록정책부장으로 있다가, 2018년에 장애인 도서관으로 왔죠. 어릴 적에 소아마비를 앓아서 지체장애인이 됐는데, 당시 ‘사서’의 이미지가 조용히 앉아서 책 보고, 대여해주는 걸로만 알고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거예요. 물론 실제와는 달랐지만...(웃음) 기록학에 흥미를 갖게 된 건 원자력 회사에 있을 때에요. 각종 선진국에서 나오는 전문 자료들을 구매하고 배우면서 보람을 느꼈고 “아, 내 길이구나!”싶어서 40대에 석ㆍ박사를 하게 됐어요. 사서로서의 경력은 애매하지만, 제가 30년 넘게 경험한 지식이 도서관 업무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지원했고, 지금까지도 매일 배우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9. 진부한 질문이지만, 요즘 읽고 계신 책이 있나요?

저기 제 책상 위에 보이는 책인데, 「만들어진 진실」이라는 책이에요. 요즘 가짜 뉴스가 대세잖아요. 범람하는 정보 홍수 속에 왜곡되는 정보가 많으니, 어떻게 진실을 가려낼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또 최근에는 「에이트」라는 책을 읽었는데, AI인공지능ㆍ빅데이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질문을 던지는 책이에요.

요즘 인터넷에 도서를 검색해보면 저자, 출판사, 줄거리 등이 나오잖아요. 근데 진부하고 부정확한 정보가 난무해요. 책 한 권을 이미지로 빨리 스캔해서 색인만 대충 넣고 찍어낸 책들이 많거든요. 빅데이터가 어떤 책을 제대로 분석해서 결과물을 내려면 텍스트 전체를 수집해야 되는데, 이미지 스캐닝만 하다 보니 글자 한 자 한 자가 살아있는 데이터가 아니라 흰 건 종이, 까만 건 글씨로만 보이는 죽어있는 데이터가 판치게 된 거에요.  

문제는 대부분의 기관들이 이런 죽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이걸 다시 OCR(광학적 문자 판독 장치) 처리해서 텍스트로 바꾸려면 비용이 발생하고 100% 전환도 어려워요. AI시대가 올거라 예상하지 못 했겠죠.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서 짧은 시간 대비 적은 비용으로 일해 왔으니까요. 지금이라도 빅데이터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서관도 품질 높은 데이터들을 양산해야한다고 봅니다.

10. 마지막으로 임기 말까지 꼭 이루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요?

지금 직원이 20명인데, 인원 요청은 행정안전부 쪽이고, 예산 지원은 기획재정부 소관이에요. 처음에 60명에서 시작했다가 깎이고 깎여서 2명 충원한 게 20명이 됐네요. 도서관 승격됐다고 좋아만 할 게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하려면 인원 충원이 절실해요. 또 가장 중요한 예산 증액도 요청했는데, 안되면 기존 역할에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별반 다를 게 없겠죠? 예산ㆍ인적 자원 확보에 대한 열망이 가장 커요.

지금보다 더 많은 대체자료를 제작하고, 장애인의 정보 접근이 편해지도록 법률적인 틀을 닦아나갈 계획입니다. 또 수어ㆍ점자에 특화된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하려해요. 지금 열람실 운영이 중단되어서, 이용객들이 못 오고 계시는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출처 : 소셜포커스(SocialFocus)(http://www.socialfocus.co.kr)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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